잊고 지내던 것들
왜 웹사이트에 굳이 자개와 수묵을 담고 싶었나. 브랜드 이름 nacre의 뿌리에 대한, 조금 더 사적인 에세이. 기술은 유행을 타지만 어떤 정서는 오래 남는다.
이 블로그와 제 프로젝트들은 전부 nacre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요.
디자인 시스템 글에서 잠깐 얘기했지만, 여기선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.
Nacre는 자개예요.
나전칠기 — 옻칠한 검은 바탕에 전복·소라 껍데기를 얇게 오려 박아, 빛의 각도에 따라 영롱하게 반짝이는 그 공예.
어릴 적 안방엔 자개장롱이 있었어요.
평소엔 그냥 까만 가구인데, 아침 햇살이 특정 각도로 들 때만 표면이 무지갯빛으로 살아났죠.
문갑도, 소반도 그랬고요.
그땐 그게 얼마나 특별한 건지 몰랐어요.
그냥 늘 거기 있는 것이었으니까.
지금은 그런 걸 잘 안 보잖아요.
집도, 화면도 점점 매끈하고 균일해지고.
그러다 문득 제가 잊고 지내던 그 빛이 떠올랐어요.
내가 만드는 것들에 그 정서를 담으면 어떨까.
“자개를 좋아하면 그냥 자개를 사면 되지, 왜 웹사이트에?”
싶을 수 있어요.
그런데 저는 웹을 만드는 사람이잖아요.
매일 다루는 재료가 픽셀과 CSS고요.
그러니 제가 그 정서를 담을 수 있는 자리는 화면이었어요.
그래서 디자인의 결을 서양식 플랫·네온이 아니라 동양화 쪽, 수묵담채로 잡았어요.
바탕은 바랜 한지색, 글자는 초록기 도는 먹, 강조는 청자 초록 한 방울.
요란하지 않게, 여백으로 숨 쉬게.
재밌는 건 자개와 수묵이 화면에서 만나는 방식이에요.
평소엔 먹처럼 가라앉아 있다가, 손이 닿는 순간에만 청자빛이 자개처럼 반짝이도록 했거든요.
자개장롱이 빛 드는 각도에서만 영롱해지던, 딱 그 원리로요.
개발을 배우며 느낀 게 있어요.
프레임워크도 트렌드도 무섭게 바뀌어요.
몇 년 전 최신이 지금은 레거시고요.
그 속도를 좇다 보면 가끔 지쳐요.
그런데 정서는 안 그렇더라고요.
자개의 반짝임, 수묵의 여백, 잊고 지내던 그 결.
이런 건 유행을 안 타요.
오래 남아요.
그래서 저는 화면의 가장 바닥에, 기술이 아니라 정서를 심고 싶었어요.
그 위에 무슨 프레임워크를 올리든 변하지 않을 것으로.
거창한 결론은 없어요.
그냥, 우리가 잊고 지내던 아름다운 것들이 있고, 저는 그중 하나를 제가 만드는 화면에 담아보고 싶었을 뿐이에요.
이 블로그를 읽다 어딘가에서 청자빛이 반짝이거든, 그게 안방 장롱에서 온 빛이라고 생각해주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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